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장 자크 루소 (문단 편집) == 평가 및 영향 == 루소의 사상이 이후의 사회에 준 영향은 엄청나게 크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과 《[[사회계약론]]》을 통해 나타낸 그의 민권사상이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지주'''가 되었으며, 훗날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로베스피에르]] 등의 혁명가에게 영향을 주었다.[* 로베스피에르는 로마 공화정의 이상적인 모습, 루소와 카토, 키케로의 사상에 매료되어 공화주의자가 되었고, 루소와는 직접 만나본 적도 있다고 한다.] 루소가 근현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의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방식의 글쓰기는 [[낭만주의]] 문학의 서막을 열었으며, [[요한 볼프강 폰 괴테|괴테]]와 [[실러]] 등에게 이래저래 영향을 주었다. 또한 독실한 [[기독교]]인([[칼뱅파]] 개신교→[[가톨릭]]→다시 칼뱅파 개신교로 [[개종]])으로써 [[신학]]에 미친 영향도 컸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이전까지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의존하여 신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증명하고자 하는 노력은 거의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는데, 루소의 이성보다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신의 존재를 설명하는 글은 매우 효과적이었고,[* 예를 들어 해가 뜨면서 빛이 어둠을 몰아내는 모습을 보면 구름이 흩어지듯이 의심이 없어지며 신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는 식이었다.] 이후 개신교 신학은 루소의 방식을 많이 따라가게 되었다. 연애소설 《[[엘로이즈#s-3|신 엘로이즈]]》는 19세기 낭만주의의 선구로 일컬어지고 있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신 엘로이즈》의 영향을 받았다. 그 밖에 애인 사이에 생긴 5명의 아이를 차례차례 버렸다고 고백한 자서전인 《고백록》이 있다.(...) 성선설을 주장해 [[윤리학]]적 업적을 남겼다. 그래서 [[윤리(교과)|윤리]] 시간에 [[순자]]의 성악설을 [[토머스 홉스]], [[고자(전국시대)|고자]]의 성무선악설은 [[존 로크]]에 비견하듯이. [[맹자]]의 성선설과 루소의 철학을 비견한다. 다만 루소철학과 맹자의 성선설은 성선만 같고, 이에 대한 '''관점과 결론은 상이'''하니 주의하자. 루소는 인간이 문명 국가를 만들기 이전인 자연 상태에서는 선했고 모두가 평등했지만,[* 루소가 설명한 이러한 상태를 ‘고상한 야만인’이라고 부르는데, 루소가 생각했던 것은 [[석기 시대]]의 원시인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 시대의 [[스파르타]]인이나 유럽인이 도착하기 이전의 [[아메리카 원주민|북아메리카 원주민]]과 같은 삶이었다.] 사유 재산이 생기면서 악해졌고, 따라서 사람들이 재산을 포함한 모든 권리를 무조건적으로 공동체에 양도한다면 진정한 자유와 선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루소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사상가라서 계몽주의자로 엮이기도 하지만 그는 이성과 감성의 조화, 자연권의 강조 등을 통해 이성의 진보만을 믿던 계몽주의와는 궤를 달리 하였다. 그의 정치사상은 위에도 언급했지만 프랑스 혁명의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고, 교육학에 있어서도 혁명적인 전환을 이룩하게 하여 아동중심 자유교육, 생활중심 교육, 노작주의 교육 등 19세기부터 교육학을 이끌어가는 대부분의 교육사조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문학에 있어서도 기존의 고전주의 문학에서 19세기를 이끄는 낭만주의 문학 사조로의 변화를 이끈 선구자적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다만 그의 철학적 바탕이 ‘평등’과 ‘자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낮게 보았던 당시 보편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저서 《에밀》 5편에서 "여성에게는 주권이 없으니 교육을 시킬 필요도 없다"며 "정치에 참여시켜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가 만인평등 사상을 주장했던 것과 비교하면 분명한 모순이었지만, 당시 루소를 포함한 대부분의 계몽주의자들은 여성을 평등한 권리를 누릴 권리가 있는 인간으로 정의하지 않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루소의 저서 《에밀》은 최초의 페미니즘 도서로 알려진 《[[여성의 권리 옹호]]》에서도 엄청나게 공격을 받는다. 다만 루소의 다른 저작에서는 여성의 역할을 치켜세워주는 내용도 있으며, 루소가 원래 여기서는 여자를 비하하고 저기서는 남자를 비하해서 상호 비하를 통해 평등적 사유를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에드먼드 버크]]도 루소의 사상을 비판했는데 그의 자연론적 사상을 보면서 "그렇게 평등하다던 원시시대에 왜 인간이 후에 스스로 정부를 만들고 국가를 만드는가?"라고 비판하였다. 하지만 루소는 자신의 책에서 원시 시대의 인간은 혼자서 자기보존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어쩔 수 없이 놓이면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공동체를 형성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서, 버크는 이후 루소전문가들에게 두고두고 틀렸다고 지적받게 되지만, 버크의 말은 일반 대중들에게 유명해져서 루소를 공격하는 말의 대표로 종종 쓰이곤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